“6월의 영적 신부로 드려지기 바랍니다” 6-9-2024 | 운영자 | 2024-0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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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6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저는 해마다 6월이면 결혼식이 많은 ‘신부의 달’이기에 ‘영적 신부’로 단장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에는 ‘LGBTQ Pride Month’(성 소수자 자부의 달)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동성애자와 성 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신앙인이 가질 수 있는 유혹은 성 소수자를 향해 정죄의 돌을 던지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은 그들을 내 가족, 자녀로 여기고 성 정체성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 된 정체성을 심어주는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영적 정체성이 먼저 정립된다면 성경적 성 정체성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답은 아는데 해결하는 방법이 서툰 것 같습니다. 수년 전 코스타 중보기도실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이 울며 기도했습니다. 기도실을 찾은 많은 청년이 자신이 속한 교회가 동성애 문제로 나눠지고 분열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공공연하게 이것을 화제 삼아 이분적으로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성 소수자들은 법조계와 교육계, 문화 영역을 점령해서 이미 수많은 법률과 문화 콘텐츠로 다음 세대는 교육받고 있습니다. 교회는 아니 신앙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각자 답을 구해야겠지만 제가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저 자신부터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혼식 때 배우자 앞에서 서약하듯이 우리 주님 앞에서 영적 신부로 살 것을 새롭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입술의 고백과 의지적 결단은 신앙을 지키는 철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둘째,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 성경적 가치관 위에 살도록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한 것처럼, 느헤미야가 자기 집을 지키며 동시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했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가족은 내가 짊어져야 할 기도의 십자가입니다. 한 가지 더 나눈다면 하나님 아버지 마음으로 연약한 자를 품는 것입니다. 사실 실수했거나 죄를 지었을 때 문제를 지적해서 수치감을 주는 것은 문제 해결에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품이 있었기 때문이듯이, 누군가 실수했을 때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사랑으로 안아주는 품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회복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갈등과 싸움, 아픔과 실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실패한 베드로를 맞아 주신 주님 마음을 품는다면 이 땅의 수많은 회복된 영적 신부의 행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현수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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